반려동물이 주인의 감정을 느끼는 과학 궁금증, 실험, 원리, 이해 마음이 닿을 때 생기는 신기한 연결에 대해서 공유합니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유난히 마음이 뒤척이던 어느 저녁, 거실 불만 희미하게 켜둔 채 소파에 앉아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있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평소라면 둘째아들과 장난치며 뛰어다니던 강아지가 그날은 조용히 다가와 제 발끝에 몸을 기대고 눈을 맞추려는 듯 고개를 든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먼저 알아채고 옆에 와 주는 것 같은 그 순간, 묵직하게 눌리던 마음이 조금 풀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강아지가 제 표정을 보고 온 것 같다며 은근히 웃었고, 큰딸은 강아지가 평소보다 차분하다며 제 옆으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둘째아들은 강아지가 왜 그러는지 궁금해하며 조심스레 등을 쓰다듬었고, 막내딸은 제 무릎 위로 올라오며 강아지에게도 다가가려는 듯한 작은 손짓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반려동물이 사람 마음을 정말 느끼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궁금증
어떤 날은 말 한마디조차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이면 강아지가 먼저 제 곁에 와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장난을 걸며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제 호흡을 따라가는 듯한 모습이 반복됐습니다. 아내가 피곤함을 숨기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있을 때도 강아지는 깡충거리던 행동을 멈추고 아내 발끝에 몸을 붙였습니다.
큰딸이 시험을 망치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던 날엔 강아지가 큰딸의 옆구리에 몸을 기대며 한참이나 가만히 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막내딸이 신나서 재잘거릴 때는 그 기운을 그대로 받아 뛰어다니던 강아지가, 아이가 속상한 날엔 신기하게도 조용히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자, 강아지가 단순히 분위기를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감정의 결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알고 싶었습니다.
실험
궁금증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가족 모두와 강아지의 하루 행동을 조금씩 기록해보기로 했습니다. 큰딸이 좋은 소식을 안고 집에 오던 날엔 강아지가 먼저 반응했습니다. 꼬리의 각도가 평소보다 더 위로 향했고, 큰딸 곁을 빠르게 맴돌며 들뜬 에너지를 그대로 옮기는 듯했습니다. 큰딸은 강아지가 자기도 모르게 기분을 따라 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반대로 둘째아들이 속상해 눈물을 훔치던 날엔 강아지가 장난감을 물다 말고 둘째에게 다가와 무릎을 톡 건드리고 얼굴을 얹었습니다. 둘째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던 눈물을 멈추고 강아지를 꼭 안았고, 그 순간 흐르던 공기까지도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피곤에 지쳐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강아지는 산책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발가락 근처에 몸을 말고 앉아 숨을 천천히 맞추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 모습만으로도 아내는 눈을 감고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막내딸이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다니던 날엔 강아지가 장난감을 들고 따라다니며 온몸으로 기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작은 몸이 보여주는 감정의 반응은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 관찰 기록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농촌진흥청이 2022년에 발표한 자료에서 반려동물이 사람의 표정 변화와 목소리 떨림 같은 신호를 감지해 감정 구분을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또 미국수의학회가 2021년에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개가 사람의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를 냄새로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반려동물은 주인의 습관만 기억해서 행동한다는 말은 이러한 연구 결과와는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사람조차 알아채지 못한 감정의 변화를 반려동물이 먼저 읽어내는 경우가 꽤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원리
감정은 말보다 먼저 몸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깨가 조금 내려가거나, 숨이 짧아지고,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목소리가 미세하게 변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반려동물은 이런 작은 신호들을 빠르게 읽습니다. 야생에서 상대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해야만 했던 본능적 특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는 사람의 얼굴 근육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냄새로 스트레스 상태까지도 판단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속으로 괜찮다고 말하려 해도, 몸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반려동물은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반려동물은 그 흐름의 방향을 스스로 읽고 다가오는 셈입니다.
이해
며칠간 기록한 행동들은 반려동물이 단순히 가족의 습관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미묘한 진폭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지친 날엔 걸음 속도에 맞춰 조용히 따라오고, 큰딸이 침묵으로 불안을 숨기던 날엔 그녀 옆구리에 몸을 기댔습니다. 둘째아들이 속상한 날엔 놀던 장난감을 멈추며 아이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작고 따뜻한 몸을 기대던 그 순간들 덕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다시 하루를 잘 이어갈 수 있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 행동들 하나하나가 단순해 보이지만, 가족의 감정과 반려동물의 반응이 서로 겹치며 만들어낸 연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반려동물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먼저 알아채고 다가오나요. 혹시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위로를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